빅터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 >,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심리

 이번 포스팅은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정신과 의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알게 된 극악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새로운 모습 13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독일 나치의 히틀러는 유대인을 완전 제거할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기차를 통해 강제로 수용소에 모으기 시작합니다. 수용소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가져온 물건을 다 뺏긴 채로 알몸이 되고, 그다음 일을 할 수 없는 자와 일을 할 수 있는 자로 구분되었습니다. 일을 할 수 없는 자는 목욕탕에 가서 씻게 해 주었는데, 이 목욕탕은 이름만 목욕탕 일뿐 일명 가스실로 불리는 대량 학살장이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끝없는 노역에 시달립니다.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한 채 참호를 팠습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비실대는 순간 목욕탕에 조용히 끌려갔습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부터 살아 돌아옵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심리상태와 의지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학문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굶주림과 추의,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수용소 생활에서 발견한 것들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심리 13가지

죽음의 수용소에서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죽음의 수용소에서

첫 번째 발견,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었으며, 상처가 나도 곪지 않았습니다. 비타민이 결핍되어있음에도 잇몸은 튼튼했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람도 코를 골면서 잘 잤습니다. 

두 번째 발견, 의외로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없는 상황, 엄청난 고통은 자살을 생각나게 하지만, 실제 자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극도의 절망과 언제든지 가스실로 끌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자살을 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발견,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어린아이의 죽음,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폭력들을 보고도 혐오감,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연속된 끔찍한 광경을 보면 수용소 생활의 몇 주만 지나도 감정은 사라집니다.

네 번째 발견, 무감정 상태에서도 분노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낀 모멸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발견, 성욕이 사라졌습니다. 오랜 기간 성생활을 하지 못해도 성욕이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는 영양실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도 성적인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째 발견, 정치와 종교에 빠져듭니다. 정치에 대한 시도 때도 없는 소문에 휩싸였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더 깊게 종교에 빠져들었습니다. 

 

 

 

일곱 번째 발견,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사랑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큰 행복을 느낍니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입니다.

여덟 번째 발견, 예술과 유머가 있었습니다. 끔찍한 생활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낭송했습니다. 예술과 유머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홉 번째 발견, 가장 절망적인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언제까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 미래가 없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는 행위는 삶의 의지를 잊고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열 번째 발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킵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정신력도 육체도 쇠퇴하게 됩니다. 결국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죽게 됩니다. 니체 또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버틸 수 있다."

열한 번째 발견, 해방을 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해방 이후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동안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열두 번째 발견, 도덕성을 상실합니다. 해방 이후 폭력과 불의에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로 변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마지막 발견, 시련은 값진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시련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시련을 겪은 이후 즉각적인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시련은 값진 것이라 하면서 마무리 짓습니다. 시련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시련으로부터 겪는 고통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시련이 얼마나 깊은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련이든지 시련은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해 주며, 시련 그 자체가 인간의 삶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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