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그는 누구인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에피소드 - 1

 이번 포스팅은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가 누구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손정의는 한국사람일까? 일본사람일까? 그의 귀화 일화

 우선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 출신이며, 1990년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를 했습니다. 손정의는 우리나라와 관련이 많고 우리에게는 한국 이름이 익숙하지만 일본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우리나라 정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보통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들은 한국 이름과 일본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손정의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손정의의 일본 이름은 야스모토 마사요시입니다. 재일교포는 보통 일본 국적으로 귀화를 할 때 일본 이름을 선택해서 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한국 성인 '손'을 지킨 채 '손 마사요시'로 귀화를 신청했습니다. 일본 사람의 성에는 '손'이라는 성씨가 없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손정의는 손이라는 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본인 아내의 성을 '손' 씨로 바꿉니다. 일본 법 상으로 외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 분은 특례가 인정되기 때문에 아내의 성을 먼저 바꾸고, 그러면 '손'씨 성을 가진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손'씨로 귀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스모토라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손'이라는 성씨를 가지고 일본인으로 귀화를 했으며 그 사람이 일본에서 가장 부자라는 것은 일본에서 엄청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정의 씨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왜 손씨로 귀화를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손이라는 성씨로 귀화를 하지 않고 야스모토라는 성으로 귀화를 하고 크게 성공한 후에 사실 원래는 손 씨였다고 밝히면 제가 가진 이름에 대한 면목이 없을 것 같다. 나를 보고 있는 재일교포들이 당당해질 수 있도록 처음부터 손이라는 성을 가지고 이 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일본에서는 한국 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이 없기 때문에 '알고보니 재일교포였다.'라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손정의 씨는 유일하게 한국 성을 쓰면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진이 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일본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성금을 내지만, 재일교포 출신 일본인인 손정의 씨가 항상 단일 기부 최다금액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머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손정의 씨를 보면 재일교포라는 이미지보다는 되고 싶은 사업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생을 많이 한 자수성가형 기업가?

 손정의 씨에게는 고생을 많이 하고 자수성가한 CEO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틀린 사실이라고 합니다. 손정의 씨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손정의 씨가 자랄 당시인 1970년도 일본에서는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일교포라는 것이 알려지면 좋은 대기업에 가거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게 힘들 정도로 사회적인 인식이 정말 안 좋았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도 그런 인식이 조금은 남아있는데 그 당시는 너무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정의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업 내용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은데,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을 하기도 하고, 돼지 사육 등 다양한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은 도박 게임인 빠칭코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잘 나갈 때는 일본 규슈에 점포가 5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업이 잘 나가다가 손정의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휴양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이때 손정의의 형이 고등학교를 자퇴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하던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다양한 곳에서 "아버지가 쓰러지고 가계가 어려워졌고, 형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어머니와 가업을 이어가고, 손정의 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잘못 전해져 손정의 씨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손정의 씨는 규슈에서 명문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실제로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남다른 수완을 가졌던 그의 일화

 손정의 씨는 "나만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없다. 나는 당시 세계제일로 공부를 많이 했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 생각만 했다."라고 얘기하는 등 평소에 자신감에 찬 언행을 많이 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겸손하지 않다며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웃풋을 내고 있습니다. 손정의 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루 종일 공부했지만 1년 동안 하루에 5분씩은 꼭 자신에게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는 시간을 줬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 개씩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서 일 년에 300개가 넘는 아이템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1970년 당시에는 없던 신박했던 아이템은 자동번역기였습니다. 앞으로는 더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해주는 자동번역기가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다고 합니다. U.C. 버클리 경제학과였던 대학생 손정의는 사업 아이템은 생각했지만, 실현할 기술이 없었는데 당시 U.C. 버클리 공과대학 교수님들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하면서 같이 구현하자고 제안하러 다닙니다. 동양에서 온 작은 일본인 대학생이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일단 만들어주면 자기가 팔러 다니겠다고 제안하고 다니면서 설득합니다. 그렇게 자동번역기의 프로토타입 제품이 나오게 되고 손정의 씨는 일본 기업들에 연락을 합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기술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유수한 대학의 교수님과 일본인 대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많은 미팅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교수님들과 함께 방학 때 일본의 수많은 기업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카시오 등 일본의 유수한 전자제품 회사들에서는 잘 만들었지만 조금 부족하다며 거절을 하고 손을 내민 기업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자제품 회사인 SHARP는 2000만 엔을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언어들까지 개발해보라며 총액 1억 엔을 조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온 제품이 SHARP의 세계 최초 전자수첩입니다.

 대학교 재학생 시절 기업으로부터 1억 엔의 자금의 투자를 받은 손정의는 정말 어릴 때부터 싹이 다르고, 수완이 다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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