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정리(이유와 배경, 그리고 본질)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에 2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결국 범죄인 인도 법안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홍콩 시민이 승리했습니다. 이번 시위는 중국 공산당과 자유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 간의 싸움이었습니다. 홍콩 인구가 700만 명이 조금 넘는데, 200만 명이 결집한 것을 보면 정말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가치인 것 같습니다. 결국 친중파 지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한발 물러서면서 세계의 언론은 홍콩 시민들의 승리를 축하했으며, 탑 기사로 보도 중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홍콩 시위에 대한 배경, 그리고 이유와 본질에 대한 내용입니다.

홍콩 시위의 배경과 이유, 그리고 본질

 
홍콩 시위의 원인, '범죄인 인도 법안'과 그 의미
홍콩 시위
홍콩 시위

 홍콩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범죄인 인도 법안' 때문이었습니다. 홍콩인 찬퉁카이(20)가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 밖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홍콩 정부는 찬퉁카이는 대만으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대만과 송환법을 체결하지 않아 이를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중국을 포함한 대만, 마카오 등 송환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서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중국이 홍콩에 숨어 있는 중국의 범죄자들을 송환할 수 있게 되는데, 사실상 이는 중국의 정치범이나 민주투사를 잡아들일 수 있게 하는 첫번째 단추가 되게 됩니다. 비록 홍콩 행정장관이 용의자 송환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지지만, 홍콩 행정장관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맞는 친중파 정치인일 뿐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검은 속셈을 읽은 홍콩시민은 전부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결과는 홍콩 시민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입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중국과 홍콩의 갈등,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홍콩 시위
홍콩 시위의 배경과 이유, 그리고 본질

 홍콩은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청나라로부터 빼앗은 섬입니다. 1842년 홍콩섬, 1860년 카우룬 마지막으로 1898년 신계 지구를 차지했습니다. 홍콩섬과 카우룬은 영구적으로 땅을 가져온 방식이었으나, 신계지구는 99년간 땅을 빌리는 '조차지'였습니다. 이후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으로 활약합니다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잠시 점령되기도 합니다. 이후 영국은 다시 식민지 지배권을 회복합니다. 홍콩은 중국의 국공내전을 피해 도망친 이민자들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그리고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더 많은 이민자들이 죽음의 공포를 피해 홍콩으로 도망쳐오고, 수많은 중국 회사들의 본사도 홍콩으로 이전합니다. 당시 중국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상황이라 홍콩은 서방세계와 중국을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고비는 있었습니다. 1967년 홍콩에서는 거대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 식민지를 타도해야 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은 좌익세력의 노동운동은 시위를 주도하고 거리에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무장투쟁으로까지 전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영국령 홍콩은 공산세력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냉전시기를 보냅니다. 홍콩의 전선기는 1978년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방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중국 본토로의 외국인 투자의 주요 통로가 됩니다. 이에 홍콩의 기존 제조업은 쇠퇴하고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서비스 위주 산업으로 변신합니다. 그러다 어느덧 홍콩 신계 지구의 반환일이 다가옵니다. 1898년부터 조차가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99년이 지나 1997년이 다가옵니다. 1984년 영국과 중국은 길고 긴 협상 끝에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영구히 반환한다는 중영 공동선언이 발표됩니다. 사실 홍콩섬과 카우룬은 영국이 영구적인 점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계지역은 99년간 빌렸을 뿐이었습니다. 신계가 없다면 홍콩은 자립할 수 없기에 영국은 홍콩 전역을 중국에 돌려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홍콩을 반환하면 홍콩은 공산화가 될 것인데, 홍콩 시민을 은 무슨 죄겠습니까. 영국은 홍콩의 주권을 중국이 가져가되 홍콩의 행정권은 유지시켜 달라고 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합니다. 중국은 그 대신 홍콩을 자본주의 체제로 존속시키겠다며 1국가 2체제 방식을 제안합니다. 그렇기에 홍콩은 자본주의적 경제와 민주주의적인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기존 홍콩의 법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중국의 법체계는 적용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국방은 중국이 담당하는 것이었으나 치안은 홍콩이 스스로 담당하며 홍콩 자체적으로 다른 나라와 협정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과 홍콩의 갈등, '홍콩 행정장관'과 홍콩 우산 시위

홍콩 시위
홍콩 시위

 이로써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가 되며, 홍콩에서의 최고 권력자는 '홍콩 행정장관'입니다. 홍콩에서는 우파가 중국 공산당에 친화적이고 좌파가 정반대 성향을 보입니다.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우파의 경우 중국 대륙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중국 공산당에 친화적이지만,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민주파는 당연히 독재 공산당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홍콩은 민주주의 체제이긴 하나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합니다. 이 선거인단이 중국 공산당의 의도가 반영되기 있기 때문에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계속된 비판에 의해 중국은 홍콩에 직선제를 도입합니다. 그런데 입후보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의해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명 중 원하는 자에게 직접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공산당 입맛에 맞는 후보자들 사이에서 홍콩 시민이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이에 열 받아 들고일어난 것이 2014년 홍콩 우산 시위였습니다. 이에 홍콩 정부는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최루탄을 쏘았습니다. 결국 선거제 개편은 흐지부지되었고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는 우산 시위 당시 강제 진압에 앞장섰던 친중파 캐리 람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됩니다. 홍콩 시민들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굉장한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중국과의 가교 역할을 맡았던 홍콩이었지만, 중국은 상하이나 선진을 글로벌 규모의 도시로 키워내면서 기존 홍콩이 수행하던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 정부는 수천만명의 관광객을 보내주면서 홍콩 경제를 완전히 길들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2016년 기준 중국의 대외 위안화 거래의 83%가 홍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중국 경제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홍콩은 더욱 중국에 종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중국 본토의 자본이 유입되면서 가뜩이나 인구밀도 높은 작은 땅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고 홍콩 시민들의 불만은 가득 찬 상황입니다. 거기에 값싼 중국 인력이 넘어와 홍콩 내 일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중국에서 홍콩에 대한 간섭이 점점 심해집니다. 특히 집을 마련해야 하고, 일자리를 잡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불만이 가장 심각하며,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요, 실제 지니계수를 보더라도 폭동 유발 사태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중국과 홍콩의 갈등,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홍콩 시위
홍콩 시위의 배경과 이유, 그리고 본질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면서 홍콩에 자본주의 체제가 보장된 기간은 50년으로 2047년까지입니다. 홍콩의 헌번에 해당하는 홍콩 기본법 제5조는 "홍콩 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합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일국양제에 대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원칙일 뿐, 정치체제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가 중국 본토의 민주화 열풍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서서히 중국 당국은 반체제적인 요소가 있는지 감시하게 되고 홍콩의 자유는 점차 없어집니다. 미래가 안 보이는 홍콩에서는 탈출 러시가 시작됩니다. 홍콩의 중국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 중국인 유입으로 인한 치솟은 집값,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성장 동력, 정치적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받게 된 글로벌 도시 홍콩 거주민들은 이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민도 돈이 있거나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결국 떠나는 자들은 전문 기술을 갖춘 중산층 이상일 것입니다. 이들이 홍콩을 떠나간다면 홍콩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홍콩의 현재 상황은 이번 시위가 단순한 범죄인 송환 문제 그 이상을 내포함을 의미합니다. 중국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는 홍콩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이며, 중국을 소수민족으로부터 분열시킨다는 미국의 대중국 패권 전략에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벗어날 수 없는 중국의 덫에 걸려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안타깝지만, 그들의 자유와 진정한 자치권이 지켜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관련 기사 링크

BBC - "홍콩 시위: 역대 최대 200만 모여... 8장의 사진으로 보는 홍콩 시위"

매일경제 - 中, 홍콩 시위 '폭동'으로 규정... 강력 진압에 무게

중앙일보 - 홍콩 민주화 시위... 시민들, 한국어로도 상황 알리며 도움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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